[칼럼] 부모님 치매 유무 ‘힌트’로 확인하라

글 –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재홍 교수

기억력 감퇴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느끼는 문제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80~90%가 호소한다고 조사됐다. 흔히 기억력 장애는 ‘치매’의 시초 증상으로 인식돼 치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기억력 장애가 생겼다고 해서 다 치매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건망증과 치매를 구분하자

치매는 기억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적 능력 전반에 걸쳐 문제가 나타나므로 기억력만 떨어지는 ‘단순 노인성 건망증’과는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성 치매 초기에는 다른 기능은 괜찮은 가운데 기억력만 먼저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므로 단순 노인성 건망증과의 구별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노화에 따른 건망증은 기억능력에만 국한될 뿐 다른 인지능력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집 안팎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와 달리 치매는 기억력 장애 외에도 공간지각력, 계산능력, 판단능력 등이 점차 떨어지고 일상생활 수행능력에 지장이 생겨 독립적으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기억력만 놓고 보았을 때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노인성 건망증 환자는 근래 지나간 일에 대해 자세한 부분을 기억 못할 뿐 전체적인 것은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며 귀띔을 해주면 대부분 잊었던 사실을 기억해내는 반면, 치매환자는 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옆에서 힌트를 줘도 기억해내지 못한다.

예를 들면, “지난 명절 때 가족이 모였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더라? 누가 무슨 사정으로 못 왔더라?”고 한다면 건망증이고, “뭐? 언제 모인 일이 있었냐? 그런 적 없다.”라고 하면 치매에 의한 기억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단순한 건망증으로 보이는 기억력 장애라 하더라도 횟수가 잦아지거나 정도가 지나치면 치매의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가를 찾아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억력 장애도 있다.

노년의 기억력장애를 초래하는 원인에는 크게 ‘단순 노인성 건망증’, ‘가성치매’, ‘치매질환’이 있다. ‘단순 노인성 건망증’은 앞서 말했듯이 기억력만 떨어져 있을 뿐 다른 지적 능력은 유지되는 것으로 시간이 흘러도 크게 진행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 별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대부분 치매로 발전하지 않으므로 특별히 치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생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성치매’란 대개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 기억력이 떨어지고 다른 정신 능력도 감퇴되는 것으로 실제 뇌손상은 없는 경우다. 대개는 의욕이 없어지고 주의집중능력이 떨어짐에 따라 기억력이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적절한 심리치료나 항우울제를 사용하면 크게 증상이 좋아지고 진행을 막을 수 있으므로 혹시 기억력 장애가 우울증에 의한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기억력을 포함해 공간지각력, 계산력이 떨어지면 치매를 의심하자

가장 문제되는 것이 뇌손상의 결과로 생기는 ‘치매질환’이다. 치매질환 중 대표적인 것이 ‘알츠하이머병’인데, 이것은 노년에 뇌세포가 점점 파괴되면서 뇌조직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뇌기능이 차츰 떨어지는 병이다. 처음에는 주로 기억력 장애만 나타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공간지각력, 계산력, 판단력이 떨어지며 인격이 상실되고 이상 행동을 보이게 된다.

알츠하이머병으로 판명되면 치료가 쉽지는 않지만 요즘은 증상을 개선시키는 좋은 약제가 있어서 예전같이 무력감이나 좌절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주된 치료는 뇌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부족을 해소하는 것이다. 아세틸콜린이 뇌 안에서 분해되는 것을 막아주고 뇌에서 오래 작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약물이 FDA의 승인을 받아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또 다른 뇌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에 의한 뇌신경세포의 흥분성 손상을 막아주는 ‘메만틴’이라는 약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들은 알츠하이머병의 증상 개선제이지 근본적인 치료제라고 할 수 없다. 알츠하이머병의 근원적 치료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예방이고 다음으로는 조기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기억력이나 다른 인지기능의 장애만을 보이고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보존돼 있는 상태)라는 것이 치매의 전 단계로 알려지면서 이러한 단계에서 환자를 발견해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이미 치매가 분명해진 다음에는 너무 늦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치매로 드러나는 시점은 주요 부위의 뇌신경세포가 70% 이상 없어진 때이므로 어떠한 치료를 한다고 한들 이 때는 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치매의 가장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정확하게 일찍 가려낼 수 있는 진단 방법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biological markers)를 찾아내 임상진료에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균형잡힌 식사, 꾸준한 운동이 치매 예방

기억력 장애나 치매는 노인병이고 노인병은 성인병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병은 대부분 생활습관병이고 젊어서부터 미리미리 관리해야 발생을 막을 수 있듯이 치매도 일찍부터 좋은 생활습관을 들이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을 잘 치료해야 한다. 또한 흡연, 음주를 피하고 비만을 경계하며 두뇌활동과 신체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일 30분씩만 걷는 운동을 해도 치매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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